티스토리 뷰

목차



    반응형

    오쇼젠 원문 해석본에 관한 사진
    마스터, 스승

    The Master (스승)


    선(禪)에서 스승은 타인의 스승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스승이다. 그의 말과 몸짓 하나 하나가 그의 깨달음으로부터 나온다. 선사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뿐 무엇을 해야겠다는 욕망도, 생각도 없다. 그의 주위에 모인 제자들은 그를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스승의 현존을 흡수하고, 스승으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스승의 눈 속에서, 제자는 자신의 진리를 발견하며, 스승의 침묵 속에서 자기 내면의 침묵 속으로 보다 쉽게 들어간다. 스승이 제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제자를 지도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지 함께 나눌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승과 제자는 함께, 각각의 개인이 자신의 빛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에너지 장(場)을 만든다. 
    당신이 그런 스승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그런 스승을 찾지 못했다면 계속해서 찾아보라. 선생들과 자칭 스승이라고 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워라. 하지만 그들에게 안주하지 말고, 계속해서 나아가라. “차레베띠(charaiveti), 차레베띠” 라고 고타마 붓다는 말했다. “계속 나아가라.”
    Osho Ah, This!, 1장

    도움말: 
    스승은 진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진리는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전이나 말을 초월한 전달만이 가능할 뿐이다. 그것은 불꽃의 전이(transmission)이다. 그것은 그대 내면의 에너지를 일깨우는 에너지이다. 그것은 일종의 동시발생적인 것이다.스승을 찾아갈 때, 그대는 크나 큰 사랑과 신뢰, 그리고 열린 가슴을 지니고 가야 한다. 그대는 그대가 누구인지 모른다. 하지만 스승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며, 그대가 누구인지를 안다. 애벌레는 자신이 나비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대는 애벌레이다. 보살(菩薩,bodhisattva)이다. 모든 애벌레는 보살이며, 모든 보살은 애벌레다. 보살이란 나비가 될 수 있는 사람, 붓다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붓다의 씨앗을 지니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애벌레와 나비의 관계이며, 애벌레와 나비의 우정이다. 나비는 애벌레가 나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 논리적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비는 애벌레의 열망을 자극해 줄 수 있다. 그것은 가능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