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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ster (스승)
선(禪)에서 스승은 타인의 스승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스승이다. 그의 말과 몸짓 하나 하나가 그의 깨달음으로부터 나온다. 선사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뿐 무엇을 해야겠다는 욕망도, 생각도 없다. 그의 주위에 모인 제자들은 그를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스승의 현존을 흡수하고, 스승으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스승의 눈 속에서, 제자는 자신의 진리를 발견하며, 스승의 침묵 속에서 자기 내면의 침묵 속으로 보다 쉽게 들어간다. 스승이 제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제자를 지도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지 함께 나눌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승과 제자는 함께, 각각의 개인이 자신의 빛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에너지 장(場)을 만든다.
당신이 그런 스승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그런 스승을 찾지 못했다면 계속해서 찾아보라. 선생들과 자칭 스승이라고 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워라. 하지만 그들에게 안주하지 말고, 계속해서 나아가라. “차레베띠(charaiveti), 차레베띠” 라고 고타마 붓다는 말했다. “계속 나아가라.”
Osho Ah, This!, 1장
도움말:
스승은 진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진리는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전이나 말을 초월한 전달만이 가능할 뿐이다. 그것은 불꽃의 전이(transmission)이다. 그것은 그대 내면의 에너지를 일깨우는 에너지이다. 그것은 일종의 동시발생적인 것이다. 스승을 찾아갈 때, 그대는 크나 큰 사랑과 신뢰, 그리고 열린 가슴을 지니고 가야 한다. 그대는 그대가 누구인지 모른다. 하지만 스승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며, 그대가 누구인지를 안다. 애벌레는 자신이 나비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대는 애벌레이다. 보살(菩薩,bodhisattva)이다. 모든 애벌레는 보살이며, 모든 보살은 애벌레다. 보살이란 나비가 될 수 있는 사람, 붓다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붓다의 씨앗을 지니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애벌레와 나비의 관계이며, 애벌레와 나비의 우정이다. 나비는 애벌레가 나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 논리적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비는 애벌레의 열망을 자극해 줄 수 있다. 그것은 가능하다.
오쇼젠 메이저 카드들의 마무리를 하면서
아주 오래전 오쇼젠 카드를 통해 흔히 말하는 '나를 알아가는 ' 공부 또는 '마음챙김'인 것도 모른 채 마음챙김의 도구로 삼은 적이 있습니다. 오쇼젠 카드를 만나기 이전에 전 실재 삶 속에서 수없는 오쇼를 만났습니다. 자기 분야에서 한 정점을 찍은 이들, 정점을 찍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 혹은 아찔하게 정점에서 추락하는 이들, 그 모든 것과 상관없이 삶과 생과 줄다리기 하는 이들, 숨가쁜 이들, 우울한 이들, 지루한 이들, 슬픈 이들, 짜증나있는 이들, 의심하는 이들, 기타 등등인 이들....까지도 저에겐 모두 하나의 오쇼 라즈니쉬 이상의 스승들이었습니다.
인연이 있어 영적 스승을 만나 수년간 질문과 대답을 통해 땅 짚고 헤엄치듯 공부를 했고, 수박의 겉핥기 정도는 맛을 본 것 같습니다. 그 경험 때문인지 오쇼젠 카드는 처음 본 순간부터 그냥 관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워낙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 이론적인 부분을 채워보았으나 오쇼젠은 내게 처음으로 남아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입니다. 저만의 오쇼젠이 있기에 저만의 오쇼젠의 이야기를 들려드릴 생각입니다. 그 이전에
오쇼젠의 최고의 이론서는 오쇼젠의 원문 해석본입니다. 여기에 처음과 끝이 다 있어요. 다른 이들의 이론은 이 이론을 자기화시킨 것입니다. 그러니 오쇼젠을 공부하고 싶은 분들은 이 원본 해석본을 충분히 읽고 스스로의 삶속에서 나만의 인사이트를 찾아보세요. 깨달아보세요. 그러지 않고는 오쇼젠은 아직 상자 뚜껑조차 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마저 4원소들에 대한 카드들의 원문 해석본을 올려드리겠습니다. 다음편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