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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쇼젠 원문 해석본에 관한 사진
    의식


    Consciousness (의식)

     

    우리의 삶 속에서 마음의 영향은 대체로 우스꽝스럽거나, 억압적이기 때문에, '마음의 카드' 패에 나오는 대부분의 카드는 만화 같거나, 아니면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이 '의식' 카드에서는 거대한 불상이 나온다. 그는 너무나 확장되어있기 때문에, 별들마저 넘어서 있고, 그의 머리 위에는 순수한 공(空)이 존재한다. 그는 마음의 주인이 되어 마음을 하인으로 부릴 수 있게 된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한 의식을 대변한다. 
    이 카드를 뽑았다면, 그것은 지금 당신의 의식이 초연하고, 존재 핵의 깊은 고요함에 뿌리 내리고 있으며, 수정과 같은 명료함 속에 있음을 의미한다. 
    당신에게는 마음의 눈으로 진리를 이해하려는 욕망이 없다. 당신의 이해는 존재적이고 전체적이며, 삶의 맥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귀중한 선물을 받아들여라. 그리고 함께 나누어라.
    Osho Bodhidharma, The Greatest Zen Master, 5장

    도움말: 
    우리는 미지의 세계로부터 왔다가, 미지의 세계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이전에 수없이 여기에 왔었으며, 앞으로도 수없이 여기에 올 것이다. 우리의 실제 존재는 영원하지만, 우리의 몸, 우리에게 부여된 형태(embodiment)는 유한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의 틀, 우리의 집, 육체, 마음, 그것은 모두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틀은 낡고, 늙고, 죽는다. 하지만 그대의 의식은 몸과 마음을 초월해 있으며, 모든 것을 초월해 있다. 이 의식을 보리 달마는 무심(無心)이라고 불렀고, 붓다 역시 이를 무심이라고 불렀다. 무심은 영원하다. 무심은 잠시 형상을 지녔다가 다시 미지의 세계로 돌아간다.미지(未知,unknown)에서 기지(旣知,known)로, 다시 기지에서 미지로의 움직임은 사람이 깨달을 때까지 영원히 계속된다. 한 사람이 깨달으면, 그때 그의 생은 마지막 생이 된다. 그 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자신을 깨달은 이 꽃은 다시 삶으로 돌아올 필요가 없다. 
    삶은 '배우기 위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그는 배울 것을 모두 배웠다. 그는 미망(迷妄,delusion)을 초월했다. 이제 그는 처음으로 기지의 세계로부터 미지의 세계가 아닌 불가지(不可知,knownable)의 세계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오쇼젠 원문 해석본에 관한 사진
    정신분열증

    Schizophrenia (정신분열증)

     

    이 카드의 인물은 단단한 두 벼랑 사이에서 어떻게도 못하고 있었던 옛 생각들에 대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도 마음의 우유부단하고, 이중적인 면 때문에 어떻게도 못하고 있을 때, 똑같은 상황 속에 있게 된다. 
    양손을 놓아 버리고, 머리부터 떨어질 것인가? 아니면 발을 놓아 버리고, 다리부터 먼저 떨어질 것인가? 여기로 가야 하나? 저기로 가야 하나? "예"라고 말해야 하나? "아니오"라고 말해야 하나? 그리고 우리는 어떤 결정을 했든, 항상 "다른 쪽을 선택했어야 하지 않았을까?"하고 후회한다. 
    이러한 딜레마(dilemma)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안된 말이지만, 양쪽 모두를 동시에 놓아 버리는 것이다. 문제를 풀려고 하거나, 옳고 그름을 따지거나, 아니면 마음으로 해결해 보려고 해서는 그 딜레마로부터 빠져 나올 수 없다. 
    당신의 가슴을 찾을 수 있다면 가슴을 따르라. 가슴이 어디 있는지를 찾을 수 없다면, 펄쩍 펄쩍 뛰어 보라. 그러면 당신의 가슴은 빨리 뛸 것이고, 당신의 가슴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Osho Dang Dang Doko Dang, 3장

    도움말: 
    인간은 분열되어 있다. 정신 분열증은, 적어도 지금 시대에는, 인간의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 버렸다. 원시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의 조건화와 문명, 문화와 종교는 인간을 분리되고, 분열된 모순 투성이의 군중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분열은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다. 
    우리 안의 깊은 어딘가에는 아직도 통일된 전체가 살아 있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이기 때문에, 모든 조건화는 기껏해야 인간의 껍질만을 파괴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중심은 건드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때문에 인간은 계속 살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지옥이 되어 버렸다.선의 모든 노력은 어떻게 이러한 정신분열증을 떨쳐 버릴 것인가, 어떻게 이중적인 인격을 떨쳐 버릴 것인가, 나누어진 마음을 어떻게 던져 버릴 수 있는가, 어떻게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고, 중심 잡히고, 결정화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지금 그대가 존재하는 방식으로는 그대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대는 존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는 시장과 같다. 수많은 목소리들. "예"라고 말하고 싶은데도, 즉시 "아니오"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그대는 "예"라는 말 한마디조차도 전체적으로 할 수 없다. 이런 방식이라면 행복은 가능하지 않다. 불행은 분리된 인격의 당연한 결과이다.

     

     

    오쇼젠 원문 해석본에 관한 사진
    고립

    Ice-olation (고립)

     

    사회에서, 특히 남성의 경우에,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때, 슬픈 표정을 짓거나 울지 말고 용감한 표정을 지으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여성 또한 이와 똑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누구나 한 두 번쯤, 느낌과 감정의 문을 꼭꼭 닫는 것 만이 다시는 상처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특히 고통이 정말로 심할 때, 우리는 자신에게조차 그 고통을 감추려고 한다. 이것은 우리를 경직되고, 얼어붙게 한다. 왜냐하면 이 얼음에 조그마한 금이라도 간다면 상처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것을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카드 속 얼굴의 무지개빛 눈물 방울들이 얼어붙은 고립(Ice-olation)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는 열쇠이다. 눈물이, 오직 눈물만이 이 얼음을 녹일 수 있는 힘이 있다. 
    울어도 괜찮다. 당신의 눈물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우는 것은 우리가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며,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부드러워질 수 있도록 허락한다. 그리고 마침내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준다.
    Osho Zen: The Path of Paradox, 1권, 5장


    도움말: 
    우리가 불행한 것은 우리가 너무나 자아(self) 속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너무 자아 속에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우리가 너무나 자아 속에 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대는 존재 속에 있든지, 아니면 자아 속에 있든지, 두 가지 선택 밖에 없다. 동시에 양쪽에 있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자아 속에 있다는 말은 '분리되고, 나뉘어 있다'는 말이다. 자아 속에 있다는 것은 '섬이 되어버린 것'을 의미한다. 자아 속에 있다는 것은 '그대 주위에 경계선을 그어 놓았다'는 말이다. 자아 속에 있다는 것은 '이것은 나이다' 혹은 '저것은 내가 아니다'와 같이 구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와 '나 아님'을 구분하는 정의와 경계가 바로 '자아'이다. 따라서 자아는 고립되게 된다. 그리고 그대는 얼어붙고, 더 이상 흐르지 않게 된다. 그대가 흐르고 있을 때, 자아는 존재할 수 없다. 때문에 사람들은 거의 얼음 덩어리가 되어 버린다. 그들은 어떠한 따뜻함도, 아무런 사랑도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랑은 따뜻함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사랑을 두려워한다. 따뜻함이 찾아오면, 그들은 녹기 시작하고, 경계는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 속에서 경계는 사라진다. 기쁨 속에서도 경계는 사라진다. 왜냐하면 기쁨은 차갑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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